지난 1월 17일 최초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는 2달여 만에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으로 퍼져 현재까지 481농가에서 1213만 마리 이상의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다. 살처분 마릿수가 1000만 마리가 넘어가면서 사상 최대 규모의 피해로 기록되고 있다.
최근 10년간 총 5차례 AI가 발생하는 동안 정부의 AI 방역 및 살처분 방식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과 비판이 제기돼 왔다. 정부의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 대응으로 AI발생지역의 농가들의 피해가 가중됐으며 직접 피해만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어 농가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농가들의 고통과 함께 방역 및 살처분 현장에 투입되는 공무원들의 고통도 극심하다. 현장에 동원된 공무원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장시간 피로와 가축 살처분 과정에서의 트라우마 등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발생 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농가들과 현장공무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 자리가 마련돼 눈길을 끌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AI대책특별위원회 김춘진 위원장(새정치민주연합, 고창․부안)은 9일 국회본청에서 'AI방역 및 살처분 피해자 증언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AI 발생 지역에서 고통받고 있는 농가들과 현장공무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정부의 AI 방역 및 살처분 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해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자리가 됐다. 또한 피해농가, 현장공무원, 동물보호단체, 정부 측 관계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한자리에 모인만큼, 기존과는 차별화된 논의가 전개됐다.
이 자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원내대표는 "AI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농가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보상금을 삭감하고 위험지역으로 지정해 신규농가진입 자체를 규제 하겠다는 것은 피해농가 지원에 앞장서야할 정부가 AI 발생책임을 농가에 뒤집어 씌우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전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AI대책특별위원회는 축산 농가의 어려움을 경감시키기 위해 가금류 소비촉진과 정부의 AI 방역대책에 대한 지속적으로 감시, 실효성 있는 농가보상대책 마련으로 농민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민들이 안심 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춘진 위원장은 "4차례 AI를 겪는 과정에서 AI바이러스는 꾸준히 진화지만 우리의 AI 예방과 방역은 제자리걸음"이라며 "살처분을 당한 농가뿐만 아니라 이동제한에 걸리거나 혹은 소비 급감으로 출하 시기를 놓친 농가들은 생계대책을 마련하지 못해 고통의 나날을 보낸 지 벌써 세달이 넘었다"고 밝혔다.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AI특위에서는 그동안 살처분 보상금 전액을 국비화하고 토종닭 농가들의 도축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가축전염병예방법과 축산물위생관리법을 국회에 대표 발의 한 바 있다"며 "중요한 것은 법안을 만드는 것보다 법을 관철시키는 것. 전병헌 원내대표님과 의원님들께서 자리를 함께 하신만큼 당에서도 법안처리에 관심을 가져주시리라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이 자리에서는 AI 발생으로 인한 현장 피해의 생생한 증언들이 나왔다.
문재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무처장 - 공무원 살처분 인력 강제편성 위법.인권침해
문재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충북지역본부 사무처장은 "공무원노동자의 건강권과 인권의 입장에서 조류독감발생시 살처분 인력 및 초동방역 인력으로 공무원을 강제편성하는 것은 위법적이며 인권침해"라며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긴급행동지침에 따르면 살처분 참여 불가능한 자도 옆에 있는 동료 고통을 보면서 함께 살처분 현장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며 이러한 것을 방역당국이 사전에 건강진단을 하지 않으므로 공무원노동자들의 건강권과 인권이 침해 받고 있다는 것이다.
문 사무총장은 "AI가 발생한 지자체 공무원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담당 업무 처리를 비롯해 살처분·방역초소·상황실·당직 등 이어지는 근무를 소화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 12일 살처분 현장에 투입됐던 진천군 공무원 정(41, 7급)씨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정씨는 지난 설 명절 연휴 기간인 1일 이월면의 한 농장에서 동료 공무원 24명과 함께 오리 2만8000마리를 살처분 했다. 지난 2일과 7일에는 살처분 현장과 방역초소에 점심, 저녁, 밤참 등을 배달하기도 했고 13일에는 살처분 현장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공무원노조는 오는 15일 세종시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농림축산식품부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홍기훈 동일농장 대표 - 예방적 살처분 축산업 형태 고려해야
충북 음성에서 동물복지축산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홍기훈 동일농장 대표는 "동물복지인증 2농장과 육성장 1농장에서 7만4000마리의 건강한 닭이 AI발생지역으로부터 3km내에 위치한다는 단순한 방역 대상 이유로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분하에 무리한 살처분을 당했다"며 "농림축산식품부의 AI긴급지침에도 축산업 형태나 지리적 여건 등이 다른 경우 기초 단체장이나 광역단체장은 위험지역의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군과 도에서 농림축산식품부에 예방적 살처분 예외 적용을 건의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동일농장은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2012년 7월 동물복지1호로 인증 받았다. 동물복지농장인증 3농장(사육규모 6만6000마리), 육성장 1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홍 대표는 "예방적 살처분의 보상금은 가축의 직접 피해에 대한 보상일 뿐. 축산업 형태의 차이에서 오는 사육 방식 및 기회비용의 손실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장식 축산 방식의 획일적인 보상은 동물복지 농장처럼 동물의 습성대로 사육하는 경우 생산의 재정상화까지 걸리는 1년 6개월이라는 기간 이익의 손실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
홍 대표는 "살처분 후 동물복지 농장의 원상회복까지의 과정은 초기 농장 설립 과정에서 겪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예방적 살처분은 축산업 형태를 고려해 선택적으로 최소한의 범위에서 전염병 예방 목적에 맞게 심각한 고민 후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 결정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전문가 집단인 가축방역협의회의 명단 및 회의록을 공개해 향후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규호 오리농장 대표 - 보상금 원천적으로 바꿔야
전남 나주에서 오리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조규호 대표는 "4회에 걸친 이동제한으로 인해 출하시기를 놓쳐 42일령 기준으로 출하해야하는 오리를 64일까지 출하하지 못하고 결국 지난달 14일 1만 8000수를 살처분했다"며 "살처분 전 3월 18일까지 기다릴 수 없어 행정당국에 조치를 취해달라고 수차례 항의를 했지만 정부기관에서는 국회의원님들께서 입법부에서 정한 일이라서 수정할 수가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뿐이었다"고 전했다.
조 대표는 정부방역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2월 24일 조규호 농가, 유가연 농가 오리에 이상이 있어 AI의심신고를 해 3월 3일 음성판정을 받고 3월 10일 양병학, 김민수 씨 농장에서 AI 의심신고를 했던 바 고병원성 AI로 확정돼 3월12일부터 15일까지 인근 9개 농가 전체를 살처분 하면서 채취한 시료에서 AI 양성판정이란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며칠전만해도 음성판정을 받은 농가들이 갑자기 전체적으로 양성판정 받았다는 것은 정부방역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또 "AI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이동제한으로 출하시기를 놓친 농가들은 추가로 들어간 사료 값이나 사육에 들어간 비용은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냐"며 "정부방침에 따라 한 것인데 출하 시에는 적은 금액이라도 지연자금이 있으나 살처분한 농가는 지연자금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AI 관련 보상책으로는 오리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살길이 막막하다"면서 "AI관련 보상액이 원천적으로 바뀌어야만 농가들이 마음 놓고 가축을 사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피해자증언대회에는 방역현장공무원에서 문재오 사무처장(전국공무원노동조합 충북지역본부)이, 가금류 사육농가 대표에서 홍기훈 대표(충북 음성 ‘동일농장’) 등 6명이, 동물보호단체 대표에서 조희경 대표(동물자유연대), 박소연 대표(동물사랑실천협회)가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