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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부 '민생물가 역할론', 생활 전반 감시망 넓혀

밀가루·설탕·생리대·교복 이어 라면·계란 등 가격담합 조사 '확대'
전문가 "물가단속은 단기처방"…중동발 유가상승 국면에선 한계

 

[문화투데이 김태균 기자] 당국의 '민생물가 역할론'이 갈수록 볼륨을 확대하고 있다.

 

설탕·밀가루·계란 등 먹거리 품목부터 생리대·교복까지 생활밀착형 품목 전반으로 정부의 감시망이 넓어지고 있다.

 

관련 물가상승률은 둔화하는 조짐이다.

 

이런 가운데 중동발(發)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에 반영되기도 전에 기름값을 서둘러 끌어올린 일부 주유소의 '꼼수 인상'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유소를 현장 점검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범부처 점검단을 중심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을 틈타 무분별하게 가격을 올리는 파렴치한 행위"를 막겠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담합·독점 등 불공정한 가격인상을 억제해야 하는 당위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당국의 조치만으로 물가 관리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8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불공정 가격담합 단속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우선 밀가루, 설탕, 계란, 전분당, 돼지고기 등이 동시다발로 조사 목록에 올랐다.

 

공정위는 7개 제분업체의 '밀가루 담합'을 전원회의에서 심의하기로 했다.

 

설탕업계 3개사에는 담합 사실을 확인해 4천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규모가 크다

 

대한산란계협회는 달걀 가격을 짬짜미한 혐의로 공정위 심판대에 올랐다.

 

지난주에는 전분당 업체 4곳에 담합사건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를 발송하고, 전원회의 심의절차에 들어갔다.

 

생활필수품 영역에서는 작년 말 생리대 3개사를 현장 조사했고, 최근에는 신학기를 앞두고 고가 논란을 일으킨 교복업체를 대대적으로 조사 중이다.

 

국세청의 탈세·탈루 세무조사도 민생 품목에 타깃을 맞추고 있다.

 

최근에는 물가불안을 일으킨 53개 업체를 세무 조사한 끝에 3천898억원의 탈세를 적발하고 1천785억원을 추징했다.

 

장바구니 물가를 위협한 탈세자를 대상으로 추가 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가격담합 독과점 가공식품 제조업체, 농축산물 유통업체·생필품 제조업체, 프랜차이즈 가맹본부 등 10여개 업체가 대상이다.

 

검찰과 경찰도 민생물가 교란 범죄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당국의 움직임은 물가지표에서 일정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월 가공식품 물가는 작년 2월보다 2.1% 오르면서 지난 2024년 12월(2.0%) 이후로 1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 폭을 나타냈다.

 

전월 대비로는 0.4% 떨어졌다. 이에 따라 가공식품 물가지수는 올해 1월 125.4까지 높아졌다가, 2월 124.9로 고점을 낮추면서 하락 반전했다.

 

세부 품목별로는 밀가루가 0.6% 하락했다. 부침가루(-10.3%), 당면(-9.3%), 시리얼(-8.3%), 두부(-6.8%) 물엿(-9.1%) 등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빵 물가상승률은 작년 하반기 6%대 달했지만, 1월 3.3%로 둔화하고 2월에는 1.7%로 축소됐다.

 

이에 따라 2월 생활물가지수는 작년 동월 대비 1.8% 오르면서 작년 8월(1.5%) 이후로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0%)을 밑도는 수치다.

 

담합 사례로 지목된 업체들이 판매가를 낮추면서 물가 오름세도 일정 부분 주춤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담합 혐의로 관계자들이 재판에 넘겨진 제분·제당업체들은 최근 연이어 가격 인하 방침을 발표했다.

 

양대 제빵 브랜드인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가 일부 빵·케이크 가격 인하를 발표하자, 라면과 과자 업체도 가격 인하를 놓고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원가 상승분을 웃도는 가격 폭리에는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이지만, 전체 물가 흐름을 안정시키기에는 외부 변수 부담이 여전히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 사태'로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국제유가도 다시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

 

정유업계와 주유소의 '기름값 폭리'에는 정부 단속으로 제동이 가능하겠지만,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는 고스란히 물가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유가 상승은 국내 물가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석유류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직접 반영되는 데다가 운송비와 생산비 상승을 통해 식품과 서비스 가격 전반을 끌어올리게 된다.

 

전문가들은 가격 담합을 차단하는 정책 자체는 필요하지만, 글로벌 유가 상승 국면에서는 물가 파급을 최소화하는 포괄적인 민생조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국 '눈치 보기'로 제품가격에 반영되지 못한 원가 상승분이 향후 한꺼번에 현실화하면서 물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도 배제하기 어렵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담합 여부를 단속하는 것은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역할로, 기업 간 담합으로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면서 "다만 원가 상승에도 가격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면 시장 왜곡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 관리 조치는 구조적인 해법이라기보다 단기적인 대응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