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비만치료제로 허가받은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1(GLP-1) 주사제 '위고비'(세마글루티드)가 지난 10월 15일 국내에 첫 출시된 이래 2개월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40만원의 안팎의 고비용에도 품귀현상이 빚어질 정도의 인기가 이어지면서 '게임체인저', '꿈의 비만 치료제', '기적의 다이어트약' 등의 수식어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위고비가 당뇨병이나 비만 치료보다는 단순히 다이어트 등의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최근 대한당뇨병학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공동 개최한 '새로운 당뇨병-비만치료약,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심포지엄에서는 여러 전문가가 나서 무분별한 GLP-1 주사제 사용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GLP-1은 우리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호르몬이다. 혈당이 올라가면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반대로 혈당이 낮으면 인슐린 분비를 억제해 혈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식욕을 억제하고 위 운동을 늦춰 포만감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이런 GLP-1과 유사한 작용을 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게 위고비, 싹센다(리라글루타이드), 마운자로(티르제파티드) 등의 약물이다.
의학계에서는 이들 약물을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라는 의미의 인크레틴(Incretin) 제재, GLP-1 증강제 등으로 부른다.
이 중 위고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인(CEO)이 체중 감량에 썼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사실 이 약물이 개발된 건 당뇨병 환자의 혈당 조절 개선이 목적이다. 하지만 임상시험 중 체중 감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당뇨병약보다 비만약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문제는 이들 GLP-1 주사제가 국내에서 당뇨병약으로는 주목받지 못한 채 비만약으로만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고비와 관련해 국내에서 품목허가를 먼저 획득한 건 오젬픽이라는 이름의 당뇨병약이다.
하지만 건강보험 급여 등재 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으면서 오젬픽이 시장에 출시되지 않았고, 오히려 비급여여서 수익성이 좋은 비만약 위고비가 먼저 출시됐다. 오젬픽과 위고비는 성분이 같으면서 개별 펜의 최대 용량이 각각 1㎎(나라에 따라 2㎎), 2.4㎎으로 다른 게 유일한 차이점이다.
이를 두고 의료계에서는 위고비 제조사인 노보노디스크가 비만약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당뇨병약의 급여 등재를 일부러 늦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위고비보다 앞서 출시된 비만약 싹센다도 마찬가지다. 이 약은 원래 빅토자라는 이름의 당뇨병약으로 먼저 시장에 나왔지만, 급여를 받지 못하면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결국 비만약으로만 살아남았다.
분당서울대병원 내분비내과 최성희 교수(대한당뇨병학회 홍보이사)는 "현재의 GLP-1 증강제는 성분이 같은 약물이 용량에 따라 당뇨병약과 비만약으로 각각 포지셔닝을 달리하는 셈"이라며 "당뇨병약으로 개발된 본래의 의도와 달리 비만약으로만 처방되는 상황이 아쉽고 안타까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위고비는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으로 고도비만이거나 27 이상이면서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심혈관질환을 가진 사람에게만 처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적응증이 아닌데도 위고비를 주사했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적응증에 상관없이 이 약을 처방해준다는 병원 리스트가 돌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비대면진료, 개인 간 중고거래 등이 그 통로로 지목된다.
상황이 이렇자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부터 비대면진료 시에 위고비를 포함한 비만치료제 처방을 제한하는 조처를 내놨다.
부작용에 대해서도 아직은 보고된 게 많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위고비 시판 후 2개월여간 집계된 부작용은 복통과 설사 등에 그치고 있다.
이는 판매 허가 전 확인된 위고비의 부작용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임상시험에서는 위고비를 허가 범위 내로 사용했을 때 두통, 구토, 설사, 변비, 담석증, 모발 손실, 급성췌장염 등의 부작용이 확인된 바 있다.
다만 앞서 처방이 이뤄졌던 외국에서 GLP-1 증강제가 자살 위험을 높인다거나 세마글루타이드 용량을 늘린 미국의 70대 남성이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한 뒤 결국 사망했다는 보고 등이 나오면서 부작용에 대한 논란은 커질 전망이다.
최성희 교수는 "GLP-1 증강제는 비만 치료의 관점에서 볼 때 위장 간 운동이 느려지고 포만감이 심해지기 때문에 구역질, 구토 등의 증상은 물론 심한 변비도 생길 수 있는 게 효과이자 부작용"이라며 "위장관적인 증상이 발생할 확률은 89%까지 보고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식약처도 부작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식약처 바이오의약품품질관리과 안광수 과장은 "현재는 출시 초기라 부작용 신고 건수가 많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작용 사례가 늘 것으로 보여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다만 현재로서는 위고비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은 피해자 본인이 감수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한당뇨병학회는 GLP-1 주사제가 기본적으로 '좋은 약'이라는 입장이다. 적응증에 맞춰 투약할 경우 체중의 15%를 감량하면서 지방간·고지혈증 개선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뇨병이나 비만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에게도 권고할 수 있는지는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한다고 학회는 지적한다.
서울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이승환 교수(대한당뇨병학회 비만당뇨병 TF팀장)는 "오젬픽은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연구에서 당화혈색소가 평균 1.5∼6% 떨어지고 체중이 5∼6kg가량 감량될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면서 "하지만 2024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도 이 약제를 당뇨병 환자에게 쓸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학회는 GLP-1 주사제가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안전도를 높이려면 처방 기준과 대상이 준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성희 교수는 "GLP-1 증강제의 이익이 가장 큰 사람은 BMI 30 이상이고 당뇨병과 심혈관질환이 있는 환자군이지만 실제 처방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BMI 25 정도의 청장년 여성층"이라고 지적했다.
당뇨병이나 비만 여부에 상관없이 경제력에 따라 처방이 갈리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최 교수는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을 동반한 고도비만 환자 중 상당수는 새로운 GLP-1 치료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반면, 오히려 비만하지 않고 건강한 사람이 미용 목적으로 처방받는 점은 역설적"이라고 꼬집었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GLP-1 증강제를 급여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무분별한 사용이 확산하면 부작용에 따른 의료비용이 국가 보험 재정 부담을 가중한다는 논리다.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이용호 교수(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는 "비만 수술이 급여화된 것처럼 GLP-1 제재도 급여화가 이뤄져야 제도권 내에서 처방이 통제되고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며 "특히 당뇨병과 비만 유병률이 높은데도 사회·경제적 부담이 큰 20∼30대가 초기부터 급여화된 상황에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