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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송결칼럼 – 호국보훈의달 6월(9)

나라가 없으면 국민도 없다. 또한 국민이 없는 나라도 없다. 나라가 주권을 잃으면 자유도 없다. 


우리나라는 1910년 일본의 강제 한일합병으로 인해 나라의 주권을 잃고 36년이란 긴 세월동안 일본의 통치아래 식민지 생활을 했다. 그 당시의 처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였다는 것을 우린 역사로 배웠다.


1945년 8월15일 광복과 더불어 우리는 자유를 찾았다.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1948년 남한만의 총선을 거쳐 이승만 정부의 대한민국이 탄생되었으나, 1950년 6월25일 새벽4시 북한 괴뢰군은 러시아(구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38선을 무력화시키며 대한민국을 침략해왔다. 분명한 북한군의 선전포고 없는 남침, 6.25사변 이었다.


6월 26일 옹진반도의 한국군 17연대가 철수했고, 치열한 공방전 끝에 의정부가 북한군에게 함락되었으며, 27일 북한군의 전차부대 일부가 서울 시내를 장악함으로써, 정부는 대전으로 퇴각하였다. 이어 한강 이북의 한국군이 전원 철수하고 28일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되자 28일 서울은 북한군에게 완전 함락되었다. 이처럼 아무 준비가 없었기에 철저히 나라가 유린당하며 동족상쟁의 아픔을 맛봐야만 했다. 


그러다 유엔16개국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 시켰으며,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9월28일 서울 수복이 이루어 졌다. 백두산 정상에 태극기까지 꼽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그것도 잠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1.4후퇴가 시작돼, 전쟁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뺏고 뺏기는 공방전을 거듭했다.


1953년 3월 5일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4월 11일 장병포로교환협정이 성립, 협정각서가 교환 되었으며, 마침내 양측은 현재의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각각 2㎞씩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기로 합의하고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서명됨으로써 3년 1개월에 걸친 승패 없는 전쟁은 새로운 남과 북의 경계선 휴전선을 그으며 끝났다.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양쪽의 사망자수는 약 245만정도로 부상자수까지 합하면 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민간인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에 달했다.


그 후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대한민국 정부는 전쟁 당시 사망한 전사자를 추모하고 기념하려는 의도에서 1956년 4월19일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규정’ 을 개정하여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거행하도록 했다.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현충기념일과 6월 25일 한국전쟁을 연계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함으로써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했다. 1970년 1월 9일 국립 묘지령 제4510호로 연1회 현충추념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으며, 1982년 5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정하였다.


옛 부터 손이 없다는 청명과 한식에는 각각 사초와 성묘를 하고, 6월 6일 망종 에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전해져 왔다. 또한 고려 현종5년 6월 6일에는 조정에서 장병의 뼈를 집으로 봉송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농경사회에서는 보리가 익고 새롭게 모내기가 시작되는 망종을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1956년 현충일 제정 당시 정부가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수없는 외침에 시달렸지만 은근과 끈기로 나라를 지켜왔다. 강인한 정신력과 투철한 애국정신으로 어려울 때 끊임없는 동족애를 발휘하며 나라를 지켜왔다. 그것은 결국 정치하는 사람들을 못 믿는 결과도 함께 초래했던 것이다. 나라의 위기 때마다 책임질 정치인들은 나 몰라라 도망쳤으나 일반 국민들은 죽음으로서 나라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은 호국영령들을 우리는 진심으로 추모하며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었을까? 그분들과 그분들의 가족에게 나라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줘야 한다. 


현재 정부는 국가유공자분들과 그 유족에게는 국가가 생활안전과 복지향상을 위하여 그 공헌과 희생의 정도에 따라 연금·생활조정수당·간호수당·보철구(補綴具) 수당 및 사망일시금 등을 지급하고 있다. 또한 국가유공자와 유족 등이 건전한 사회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도록 학자금 지급 등의 교육보호, 취업알선 등의 취업보호, 의료비보조 등의 의료보호 및 양로 ·양육보호와, 자립 및 생활안정을 위하여 농토, 주택구입자금의 대부, 생활안정자금의 대부 등을 해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철저한 영웅대접으로 그것을 본보기로 커나가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귀감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을 고취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상당한 위기에 빠져있다. 진보다 보수다 대립의 양상을 띄며 위험할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잘못하면 부모 자식 간에도 크나큰 상처를 입을 정도이다. 나이가 젊으면 진보이고 나이가 많으면 보수라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 세상에 보수만 고집한다면 무슨 발전이 있단 말인가? ‘온고이 지신’ 이란 말처럼 옛것을 알고 새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베이스 없는 정상이 어디 있겠나? 한발 한발 세상을 살아가며 좋은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나쁜 것은 과감히 고쳐나가는 그런 사회가 되게끔 남녀노소가 함께 힘써야 할 것이다. 


민주라는 것은 자율이 동반된 후에 있는 것이다. 내가 불편하다 해서 민주가 아니라고 고집해서는 안된다. 나라의 위기를 자초하는 민주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호시탐탐 우리의 분열을 야기 시키는 여러 가지 행동을 하고 있다. 피로서 지킨 나라가 또다시 좌초 위기에 빠지게 해서는 안된다. 그런 행동을 하는자들 에게는 철저히 응분의 댓가를 치르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지금까지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분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6월 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번 나라의 존립을 생각하여야 한다.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시위와 국가관에 대해선 동참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