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란 실로 그 얼굴을 취할 것도 아니요, 그 용력을 겁낼 것도 아니요, 또 그 신조나 족보를 가지고 논할 것도 아니니 오직 글을 읽는 사람이라야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다. (공자)
인간의 모든 행위 중에서 특히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워진 전통이나 연구 활동, 조사 분석, 비평 등은 책 속에 보존되어 왔다. 그것들은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줄 뿐더러, 지식을 쌓게 해 주고, 미래를 향한 발돋음에 박차를 가 할 수 있었다. 그 힘은 인류의 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자생력이기도 했다.
이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분명하다. 이렇듯 우리는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기록하여 남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록들을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책을 통하여 자신이 체험해 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대신 살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회적인 우리의 삶이 영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게 아닐까.
그러나 시간을 다투는, 아니 분, 초를 다투는 현대 사회에서 책은 이미 그 존폐의 위기에 처해 있는 실정이다. 끊임없이 변화되는 기계문명에 우리는 끌려가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나 정서를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 최첨단 기술만은 아니다. 요즘들어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이다. 벤처다 해 가며, 인터넷에 매달려 있지만 과연 그 시간들이 우리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 물론 그 시간들이 돈으로 환산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한 줄기 햇살이 주는 그 찬란함을 우리는 감사할 줄 모른다. 새벽이슬이 주는 싱그러움, 무심히 보아 넘긴 풀 한 포기의 값을 얼마라고 보는가. 한 포기의 풀, 한 줄기 햇살의 고마움을 우리는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깨달을 때가 있다. 책을 통해서 사랑과 우정을 깨닫게도 된다.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우주를 만날 수도 있다. 이렇듯 책을 통해서 우리는 마음을 열게 된다. 그래서 스스로 인간으로 돌아가는 일이 책을 읽고 책을 아끼며 책을 대 물릴 줄 아는 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책의 가치를 모른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비극은 돈으로 모든 것을 소유한 데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긴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배금주의 사상은 더욱 팽배해지기 마련이다. 의식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돈에 다가가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게 현실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 할 수밖에 없다.
하긴 아무리 훌륭한 이념이고 정서라 할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공감되지 못한다면 내 안에서 진리가 될 수 없듯이, 아무리 좋은 책을 안겨 준들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떤 감동의 기쁨이나 슬픔 또한 느끼지 못하리라.
수많은 책들에서 같은 공감대를 가진다는 것은 스스로의 지적 수준과 체험 영역과 감수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이다. 정신적인 탐구가 자기 자신과 더불어 시작되진 않는다. 더불어 자기 자신에게서 끝나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도록 책을 읽어야 한다. 스스로를 완전히 파악하는 법을 익히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이 바쁘고 내일이 조급한 현대인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숲을 보면서도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역대 제왕들 중에 전원으로 돌아온 도연명이 향기 높은 국화의 사랑스러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까닭은, 천만금의 재물보다 마음에 쌓아 둔 삶의 철학이 깊었기 때문이다. 그 철학이 독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물질주의로 치닫는 이 시대에 책읽는 습관을 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물질의 감옥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