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산책길에서
안혜숙
잔설이 깔린 새벽 산책길을 밟으면서 조심조심 혹여 넘어질까 싶어 자주 모둠발을 한다.
어제 내린 눈발이 채 녹지 않은 희끗희끗한 길이 이슬에 젖은 듯 신비스러워 때론 멈칫거리기도 한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발을 뗄 때마다 두려움보다는 상승되어가는 심장의 고동이 충동질을 하는 것 같아 발걸음은 저절로 힘차게 내딛어졌다.
마침 까마귀들의 행진이 머리 위로 날아가며 나를 반겼다. 까악, 까악! 함께 가자고…
나도 모르게 손짓을 하다가 하늘에 뜬 별을 본다. 밤새 나를 지켜준 것일까, 아니면 나보다 더 먼저 깨어나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나도 모르게 번쩍, 손을 흔드는데 우수수 떨어지는 별들의 신호는 천상의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수고 한다고, 애쓴 다고... 뭐가? 나는 염치가 없어 되묻자 별이 대답한다. 코로나19와 싸우느라 힘들겠다고, 대통령을 누굴 뽑아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고,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얼마나 시달리냐고…
나는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을 왜 내버려 두냐고, 왜 우리만 싸워야 하냐고? 갑자기 별빛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기다리면 된다는 것을…
사실 그 방법밖에 무슨 뾰쭉한 수가 있겠는가,
하긴,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던가, 그렇지, 제 아무리 지독한 바이러스라지만 영원히 살아남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제까지 살아남겠는가. 하지만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싸우는 것이다. 무엇으로? 마스크? 백신? 자가 격리 등등…
수많은 의료진과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심신의 피로도 물리치고 헌신하는 의료진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희생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내심보다 더 무서운 생존권이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전선이 무너지면 우리의 일상도 무너지는데 그저 바라만 보고, 마냥 기다리다 보니 이제는 속수무책이다. 그래서 반항도 하고 성토도 하고 어깃장도 놓는 것이다.
그래도 인류를 위해 불철주야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진들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다. 아니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서 포기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걸음은 저절로 멈추고 가슴까지 답답했다.
후두둑! 머리를 치고 떨어지는 잔설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소나무 가지가 바람에 간지럼을 탔는지 흐흐흐 흐드러지게 웃는다. 나는 따라 웃으며 내 머리를 쳤다. 정신 차리라고, 무슨 불평이 그렇게 많으냐고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바람에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포기하고 되돌아오는 걸음이 조금은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코로나 역시 어절 수 없는 상황이다.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모두가 자연의 순리인 것을 왜 모른 척 하고 불평을 하는가 싶었다.
괜히 어젯밤 혼자서 불만을 토로했던 내 짧았던 생각들이 아침 산책길을 재촉했으리라. 생각해 보면 어젯밤 잠자리에 들려는데 머리가 지근거려 화들짝 놀라서 열을 재봤다.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했는데도 뜨거운 차를 마시고 잠옷 위에 담요까지 덮어썼다. 혼자서 노심초사하며 혹시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나 싶어 마음을 졸였으니, 그 정도면 완전 노이로제 급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하겠는가.
삶과 죽음이 두 갈래로 딱 나눠진 것을…
설핏 바람 한 점이 내 뺨을 스친다. 머리를 들자 소나무가 또 웃고 있다. 나도 빙긋 답례를 해 준다. 잔설 한 줌에 머리가 개운해진 것 같아 고맙다는 인사를 한 것이다. 괜한 노심초사로 밤새 우왕좌왕하며 심란했던 마음이 잔설 한방에 개운해진 까닭이다.
인간의 한계란 결국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특히 죽음을 눈앞에 둘 때의 두려움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이 아침, 또 하나의 새로운 진리로 받아드리며 하늘을 우러러 두 손을 모은다.
안혜숙 작가는...
소설가. 시인
소설 고엽, 소녀 유관순 외 10여권
시집 봄날의 러브레터 외 2권
現 문학과의식 발행인
1990년: 중편소설 ‘아버지의 임진강’ 으로 [문학과의식]에서 등단
1991년: 중편소설 ‘저승꽃’으로 KBS문학상 수상
1990년 시 집 <멀리두고 온 휘파람소리>출간
1991년 장편소설 <:해바라기> 출간
1992년 장편소설 <고엽> 출간
1993년 장편소설 <고엽 1.2부> 합본으로 출간
1994년 장편소설 <역마살 낀 여자> 출간
1995년 장편소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1996년 장편소설 <쓰르가의 들꽃>
1997년 장편소설 <다리위의 사람들>
2002년 시 집 <사랑> 출간
2004년 장편소설 <잃어버린 영웅>
2005년 장편소설 <잃어버린 영웅> 베트남어로 번역출간
2007년 장편소설 <고엽> 베트남어로 번역 출간
2015년 시 집 <봄날의 러브레터> 출간
2017년 장편소설 <산수유는 동토에 핀다> 출간
2019년 역사소설 <소녀 유관순>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