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국적선사 HMM(옛 현대상선) 매각 본입찰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인수 후보자들의 자금 확보 방안도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HMM의 몸값은 최소 5조원에서 최대 7조원 정도로 평가된다.
지난달 6일부터 진행된 실사 작업이 지난 8일 마무리된 가운데 인수후보자들은 각자 대규모 자금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는 중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HMM의 인수후보자인 동원그룹과 하림그룹은 인수전을 위해 자회사의 전환사채(CB)를 발행하거나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앞서 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HMM 경영권 매각절차를 밟고 있다. 8일 실사기간이 끝났고 23일 본입찰을 실시할 예정이다. 매각 대상 HMM 지분가치는 9일 종가기준으로 약 6조5천억 원에 이른다.
동원그룹은 HMM 인수전을 위해 자회사의 전환사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동원그룹 지주사 동원산업은 지난 9일 “HMM 인수를 추진하기 위해 실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인수자금조달 관련해 자회사 전환사채 발행 등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며 현재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는 없다”고 공시했다.
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동원그룹은 자회사 스타키스트를 통해 5000억~6000억원의 전환사채 발행을 추진한다. 최근 전환사채에 관심을 보인 사모펀드들이 실사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스타키스트는 동원그룹이 2008년 인수한 미국의 참치통조림 제조업체이다. 지난해 매출 1조993억 원, 순이익 919억 원을 거뒀다.
이날 동원산업은 이사회를 열고 자회사 스타키스트의 신규 차입을 위한 연대보증을 결의했다. 채무금액은 1730억 원으로 차입처는 일본의 스미토모미쓰이은행이다.
하림그룹은 해운 계열사인 팬오션을 중심으로 자금조달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팬오션은 자체적으로 3조2500억원 수준의 현금성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무적 투자자(FI)로 나선 JKL파트너스가 프로젝트 펀드를 조성하고 있으며 이미 다수의 대주단을 확보한 만큼 인수금융을 통한 자금조달은 용이한 상황이다. 여기에 지주가 소유한 서울 양재동에 있는 옛 한국터미널 용지 개발이 가시화되면 자금 1조원 이상을 투입해 인수금융 조기 상환 등에 사용할 전망이다.
팬오션이 기존에 들고 있던 현금성 자산은 1조8000억원 수준이다. 지난 9월부터 시작한 실사와 함께 적극적으로 실탄을 확보해 현재 이를 3조2500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팬오션은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갖춘 전략을 통해 연간 4000억원이 넘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을 2018년부터 4년 연속 달성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안정적으로 EBITDA 5000억원 이상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림그룹은 HMM 인수전 초기부터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NH증권 미래에셋증권으로 대주단을 꾸리며 충분한 인수금융 재원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후보자들이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지만 인수까지는 부족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HMM 노조는 이날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HMM 매각 과정은 산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국가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의 발전과 무관한 부실·졸속 매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HMM 노조는 먼저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3개 기업의 인수자금 조달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6000억~2조5000억원으로 시장에서 예상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더한 HMM 최저 매각가인 5조원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노조 측은 “이들 3개 기업은 막대한 외부 자금의 차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사모펀드 등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오직 자본 수익 회수에만 몰두하는 투기자본의 (돈) 잔치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인수기업의 신규 투자 사업에 HMM의 유보자금이 유용되는 부실 경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HMM의 유동 자산은 14조원에 달한다. HMM 노사가 힘을 합쳐 고난의 시기를 지나면서 축적한 이 자산을 덩치가 작은 중견기업이 인수해 본업인 해운업이 아닌 다른 곳에 유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적격인수후보에 포함된 3개 기업은 인수자금의 절반 이상을 금융권 및 사모펀드 등을 통해 조달해야 하는데, 이렇게 들어온 재무적 투자자(FI)들이 막대한 차익을 조기에 실현하면서 자본을 빼갈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노조는 매각 이후에도 HMM의 지배구조에 불확실성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현재 산은이 중도상환을 청구한 HMM 영구채 1조 원을 제외해도, 나머지 1조7000억 원 규모의 영구채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매각 이후에도 정부는 추후 새로운 주식 32.8%(2025년 말 기준)를 소유하게 된다. 여기에 국민연금 등 다른 정부기관 지분을 더하면 사실상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며 “다른 대기업들이 이번 입찰에 참여하지 않은 것도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조는 산은의 이번 매각 작업이 유찰되도록 본입찰 전까지 지속적으로 매각 반대 의사를 표출할 계획이다.
이기호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HMM 지부장은 “산은 회장과 해양진흥공사 사장과의 면담을 추진해 다시 한번 저희들의 뜻을 전달할 계획”이라며 “필요하다면 현수막 게시, 조합원 결의대회 등 법에 저촉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노조 조합원의 의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