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투데이 구재숙 기자] SPC 계열사인 SPC삼립의 제빵공장에서 또다시 사망 사고가 나면서 3년간 1천억원을 투자해 안전관리 강화에 나서겠다던 SPC의 약속이 빈말에 그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SPC는 그동안 상당 금액을 투입해 관련 조처에 나섰다는 입장이지만, 계열사 공장에서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어 투입된 자금이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책으로 이어진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SPC에 따르면 이 업체는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까지 산업 안전 강화를 위한 투자에 835억원을 투입했다.
앞서 SPC는 2022년 10월 평택 SPL 공장에서 20대 여성 근로자가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8일 만에 대국민 사과에 나서면서 향후 3년간 1천억원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SPC는 지난해까지 약 2년간 당초 약속한 금액의 약 84%에 해당하는 금액이 집행됐다는 입장이다.
시기별로 투입된 산업 안전 강화 관련 예산 규모는 2022년 4분기 72억원, 2023년 상반기 207억원, 2023년 하반기 226억원, 지난해 상반기 173억원, 지난해 하반기 157억원 등이다.
관련 예산 835억원 가운데 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에 가장 많은 228억원이 투입됐고 안전설비 확충 225억원, 작업환경 개선 189억원, 장비 안전성 강화 148억원, 기타 45억원 순이었다.
2022년 11월에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안전경영위원회를 출범했으며, 이듬해 2월부터 관련 내용을 SPC 안전경영 레터를 통해 알려왔다.
가장 최근 게시된 지난 2월자 안전경영 레터에는 같은 달까지 15번의 안전경영위원회 정기회의를 열었으며, 지난해 안전관리와 관련해 354건의 과제를 추진해 95.2%의 진척도를 보인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3년부터 매년 전사적으로 안전경영 우수사례를 발굴해 포상하고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SPC는 자사 홈페이지에 이런 내용과 함께 "목표 금액을 계획보다 빠른 속도로 집행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무색하게 평택 사고 이후에도 SPC 계열사 공장에서 '닮은 꼴' 사고는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성남 샤니 제빵공장에서는 2023년 8월 50대 여성 근로자의 배 부위가 기계에 끼여 숨졌고, 이 외에도 근로자의 신체 부위가 절단 또는 골절되는 등의 부상 사고가 잇달았다.
3년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SPC 계열사에서 일하던 근로자 3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것이다.
산재 사고 예방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겠다던 당초 입장과는 달리, 최근 들어서는 관련한 대내외적 활동 및 홍보에 다소 느슨해진 분위기도 SPC 안팎에서 감지된다.
SPC의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올해 안전관리 강화와 관련해 업체 측이 낸 보도자료는 한 건도 없다.
회장이 대국민 사과에 나섰던 2022년 6건, 이듬해 7건의 보도자료가 게시된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온라인 일각에서는 최근 선풍적인 인기인 SPC삼립의 크보빵(KBO빵)을 비롯해 SPC그룹 제품을 불매하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관련 사고 기사 댓글창에는 "여긴 정말 답이 없다. 불매가 답인 듯", "'SPC 계열사' 구별법을 검색해서 관련 제품은 사지 않도록 주의하자", "소비자들의 힘을 보여주자" 등 반응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각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도 규탄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민주노총 경기지역본부는 SPC삼립 시화공장 사고가 발생한 19일 성명서를 내고 "SPC 측은 2022년 사고 후 안전 투자 확대와 관련 투자를 약속하고, 주요 생산시설에 국제표준 안전 인증을 취득 중이라고 했지만 말뿐이었다"며 "그저 사고가 발생하면 임기응변, 땜질만 한다. 사과하고 사죄하는 시늉만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서민위)는 SPC삼립 사고 이후 지난 20일 SPC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서민위는 2022년과 2023년 SPC 계열사에서 발생한 근로자 사망사고 등을 언급하며 "그간 동일한 형태로 사고가 반복된 점을 고려할 때 또 다른 사회적 혼란이 양산할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특히 SPC삼립 사고는 이번 대선 정국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 20일 이번 사고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면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겨냥해 "같이 합의해서 사인해놓고 (중대재해처벌법을) 악법이라고 주장하면 되겠나"라고 말했다.
김 후보가 사고 발생 전인 지난 15일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악법"이라고 발언한 점을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에 김 후보는 이 후보의 발언 이튿날인 21일 "(사업주) 구속한다고 사망자가 없어지는 게 아닌 걸 우리가 다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의식과 관련해 SPC 관계자는 "최근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자세한 내용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19일 오전 3시께 경기 시흥시에 있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정직원인 50대 여성 근로자 A씨가 이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어 숨지는 사고가 났다.
당시 A씨는 뜨거운 빵을 식히는 작업을 위해 설치된 컨베이어 벨트가 잘 돌아가도록 윤활유를 뿌리는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