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제품으로 희생한 피해가족들이 피켓을 들고 광화문과 국회, 검찰청 앞에서 400회에 가까운 시위를 하고, 전국을 돌며 도보· 자전거 캠페인을 하는가 하면 최대 가해업체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를 항의방문하며 힘겨운 싸움을 할 때에도 정작 이들을 보호하고 대변해야 할 정부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번 세월호 참사나 이번 옥시제품 참사에 그 많은 어린 아이들이 죽어갔는데도 정부는 죽음의 현장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데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1994년 ‘가습기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출시한 후 2011년까지 20여종의 관련 제품이 연간 60여만 개가 가량 팔리고 그동안 800만 명 이상이 이를 사용한 결과 영유아와 산모 등 수백 명의 목숨을 잃었다. 이번 옥시제품참사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화학사고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06년부터 시작된 이번 참사는 인체에 치명적인 유해 제품을 판매하고도 위해여부를 규명하려 들지 않은 비양심적인 기업들과 유해검증도 없이 허가를 하고 사후관리에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 사건이 더욱 커졌다. 검찰이 올해 1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면서 제조회사가 사고에 대한 공식사과와 배상을 약속하고 있고 뒤늦게 정치권도 나서서 여야가 청문회 등 진상규명 활동을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형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조직과 인원을 보강하고 예산을 투자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이러한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문제의 밑바탕에는 정부와 기업이 일을 처리하면서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는 의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형 사건사고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먼저, 불특정다수를 위한 물건이나 구조물 등을 제조 건축할 때에는 과학적인 기준이나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더욱이 사람의 목숨과 관련되는 상품이나 시설물은 사전 사후 관리에 철저를 기해야 한다.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한 각종 임상실험에 10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되듯이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제품의 제조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다음은 정부의 유해물질 관리시스템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현재 인체유해물질의 사용 용도에 따라 공산품은 산자부, 화학물질은 환경부, 식품과 의약품은 식약처에서 각각 관리하고 있다. 효율적인 관리시스템과 그에 맞는 기술적 지원체계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는 미국·일본·유럽 등 선진국 수준의 인체유해물질 관리 체계를 벤치마킹해 우리도 나타난 문제를 치유할 새로운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하겠다는 포지티브시스템의 방식에서 중요한 것만 정부가 제시하고 나머지는 기업의 재량에 맡겨 처리하도록 하는 네거티브시스템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처럼 기업에게 자율적인 생산 환경은 보장하되 사고를 일으키거나 부정직할 때는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지금 포지티브시스템 하에서는 기업이 잘못해 사고가 나도 정부가 하라는 대로 했다면서 발뺌을 하는데 익숙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가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가치와 철학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은 나라가 경제발전에 치중한 나머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인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그 이외에도 약육강식의 살벌한 경제사회 환경, 더불어 살아가는 인보정신의 결여, 전통문화와 가치관의 소멸 등이 이러한 사건사고를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철학이 복원될 때 유사한 사건사고는 사라질 것으로 믿는다.
금 번 옥시제품사고가 마지막 참사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 정부, 기업, 국민들은 모든 일에 임할 때 기본과 원칙을 충실히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가는데 큰 디딤돌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