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과일값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다시 물가가 들썩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민감한 장바구니 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1년 전보다 3.1% 상승했다. 지난해 8∼12월 3%를 웃돌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1월 2%대로 안정세를 보였는데 한 달 만에 3%대로 올라선 것이다.
구매빈도가 높은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도 지난해 10월 4.5%로 정점을 찍은 뒤 올 1월(3.4%)까지 상승 폭이 둔화했다가 넉 달 만에 3.7%로 다시 상승 폭이 커졌다.
과일 같은 신선식품 가격의 급등세 영향이 가장 컸고 국제유가 상승도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가격 변동성이 큰 농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그나마 2.5% 오르며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다.
품목별로는 사과 가격이 71% 올라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귤도 사과 대체제로 수요가 늘어 78.1%나 상승했다. 전체적으로 신선과실이 41.2%가 올랐다. 1991년 9월(43.9%) 이후 32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라고 한다.
사과값 폭등은 이상기온으로 인한 수확량 감소 탓이라고 하니 당분간 그 기세가 꺾이긴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생산량이 30%나 급감했는데 검역 문제로 외국산 수입조차 원활하지 않다고 한다. 사과나 귤 이외에 배와 딸기 가격도 큰 폭으로 오르긴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이날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물가를 2%대로 다시 안정시키기 위한 각종 재정지원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선 3∼4월 농·축·수산물 할인 지원에 600억원을 투입하고, 마트의 수입 과일 직수입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204억원을 투입해 13개 과일·채소에 납품단가를 지원해 유통업체 판매가격을 내리고, 봄 대파 출하 전 대파 3천t에 신규 관세 인하를 하기로 했다.
정부가 마트의 과일 직수입 확대 등 여러 대책을 내놨지만, 당장 체감물가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직수입 과일이 국산 과일의 수요를 곧바로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국제원유 가격이 오르는 추세라 물가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이날 물가상황점검회의에서 "농산물 등 생활물가가 당분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물가 흐름은 매끄럽기보다 울퉁불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칫 물가의 고삐를 놓쳐 고물가가 장기화할 경우 조기 기준금리 인하가 어려워지고, 경기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한은은 지난달 펴낸 '최근 한국·미국·유로 지역의 디스인플레이션 흐름 평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농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고물가 상황이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게다가 4월 총선을 앞두고 쏟아낸 각종 선심성 사업이 총선 후 물가를 더욱 부채질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정부는 물가를 조기에 잡을 수 있도록 좀 더 선제적이고 과감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