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마다 광장(廣場)정치의 열기가 뜨겁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이 지연되면서 찬반 진영 양측이 광화문과 헌법재판소 인근 거리를 정례적으로 점령하고 있다. 한쪽은 "탄핵하라"고 외치고, 다른 쪽은 "지켜내자"고 맞선다. 대한민국 전체가 둘로 갈라진 풍경 속에서 침묵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중도층이다.
정치적 스펙트럼에서 볼 때 중도는 애매한 위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의 무게추라고 할 수 있다. 목소리를 내지 않아 존재가 희미할 뿐, 그들이 움직이는 순간 판은 바뀐다.
독일의 정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제시한 '침묵의 나선' 이론은 현재 한국의 중도층을 이해하는 데 정확한 개념 틀을 제공한다. 이 이론은 다수 의견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하며, 자신이 소수라고 느끼면 침묵하게 되는 심리를 반영한다. 그 침묵은 동의가 아니라 관망이자 기다림이다.
'침묵하는 다수'는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지 않는 다수의 대중을 말한다. 이 용어는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1969년 베트남전 지원에 대한 반대 시위가 발생하자, 목소리를 내는 시끄러운 소수보다 침묵하는 다수가 훨씬 많다는 취지의 연설로 유명해졌다.
우리가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어느 쪽이 다수 대중의 뜻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중대한 사안이면 국민투표를 하기도 한다. 침묵하는 다수는 대선과 총선에서 핵심 타깃이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초기 거리는 분노로 들끓었다. 하지만 중도층은 말을 아꼈다. "사실인지 좀 더 지켜보자", "탄핵까지는 과한 것 아닌가"라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고 검찰 수사 결과가 공개되자, 중도층이 움직였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린 직후 여론조사에서 찬성 비율은 중도층에서 80%를 웃돌았다.
중도층은 느리게 움직이지만, 행동에 나서면 강력하다. 윤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중도층은 내내 침묵해왔다. 중도층의 침묵은 정확한 판단을 위한 '시간 쌓기'다. 헌재 결정 이후 대통령과 정치권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혼란이 심화하면 중도층이 나설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지금 극단을 향해 서 있다. '내 편'을 결집하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중도층을 놓치는 순간 그 대가는 크다.
2012년 총선에서 당시 야당은 여론조사에서 앞서 있었지만, 중도층이 투표 당일 여당을 선택하면서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침묵은 경고의 메시지다. 정치는 목소리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행동으로 움직이고, 그 행동은 종종 침묵 끝에 시작된다.